춤이라는 취미를 가진 지 약 2년이 지났다. 꾸준히 춘 건 아니라 햇수로 그렇다.
사랑하는 안무가, 유준선 쌤의 수업을 듣고 와서 감회가 새로워 글을 하나 남겨 본다.
다들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댄스 / 축제를 위한 댄스 연습도 한 번 해 본 적 없었던 나였다. 도서관을 좋아하는 범생이 이미지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.
(외양은 안 그래서 많이 오해받는다)
꾸준히 아이돌을 좋아했으니 막연하게 '나도 춤을 추고 싶다' 라는 생각은 있었지만,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... 학원은 다녀도 되는 건지. 가서의 민망함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... 그런 생각들로 고민하다가.
집 근처에 있는 댄스 학원에서 수능 할인을 진행한다고 했다. 춤을 전공으로 했던 언니는 그곳이 체인이라 그곳에 가는 걸 비추천한다고 했지만, 돈이 얼마 없는 내 입장에서는 저렴한 게 최고였고, 가까운 게 최고였다.
3개월 정도 알바 가기 전에 학원 출근했다. 첫째 달은 월화수목금, 안 간 날짜를 찾는 게 더 힘들었다.
처음은 원장님 수업이었는데, 첫 수업의 기본기 루틴을 마치고 나니 신기했다. 못 따라해도 재미있었다.
(이때는 루틴이라는 말도 몰랐고 기본기가 뭔지도 몰랐다 걍 막연히 잘 추고 싶었음)
'처음치고는 잘 따라하는데?!' 원장님의 그 말에 자신감이 붙었다.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.
두 번째 수업은 재즈 수업. 나는 이 쌤이 아직도 좋다.. 넘 예뻐..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하다..
재즈 수업 덕분에 유연성이 훅 올랐다. 앞으로 짚는 것도 못하다가, 이제는 어디서 뻣뻣하다는 말은 절대 안 듣는다.
재즈를 오래 잡지 못해서 아쉽지만 (내가 추구하는 춤의 방향과 조금 달라서)...
그리고 다른 학원을 두 달 다니다, 현실에 치여서 쉬게 되었음.
이 사이에 춤 영상을 엄청 봤다. 춤 알려주는 영상도 자주 보고, 어떤 포인트들을 주로 연습하는지를 학습했다.
어떤 장르를, 어떤 느낌을 내가 좋아하는지도 봤다.
'춤을 춘다'는 개념을 파트로 쪼갤 수 있게 되었다. 이럴 때는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, 이럴 때는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...
기본기에 뭐가 있는지, 어떤 것들을 춤을 출 때 유념해야 춤이 예뻐 보이는지를 알게 됐다.
그러다 준선 쌤 / 구성 쌤을 알게 됐다. 안무 영상? 쌤들 원밀 영상은 안 본 것 없다. 요즈음은 인스타로도 봄.
그렇게 벼르고 벼르다 버킷 중 하나였던 유준선 쌤 수업을 들으러 갔다.
나는 잘하지 못한다. 아마 준선 쌤 수업 듣는 사람들은 다 나보다 잘 출 거야. 나는 처참하게 뼈와 살이 분리되고 오겠지?
그래서 걱정 반, 설렘 반으로 학원에 도착했다.
스트레칭 자율적이라 조금 낯설었고, 바로 수업 들어가서 더 낯설었고, 빨라서 더 낯설었다.
거기다, 아니나 다를까, 나는 *밥이었다. (ㅋㅋㅋㅋㅋㅋㅋ)
안무 암기가 되면 그래도 바로바로 따라서 출 텐데, 준선 쌤 안무가... 모든 비트에 모든 동작을 쪼개서 넣으시고 그런다. 빠르다.
다른 사람들은 잘하는 모양이었다. 나는 또 못했다. 개못했다. 계속 뒤쳐져서 나만 영상 안 찍었다.
예상했지만 너무 웃겼고, 머쓱했다.
내 고질적인 문제, 여전히 안무 암기가 잘 안 됐다. 사람들 앞에만 서면 백지가 됐다.
사람들 것을 보면서 힌트를 얻고, 그 포인트들을 기억해서 파트를 나누고 기억하는 것까지는 됐지만,
단독으로 내가 이 안무를 기억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. 그래서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면 엔박 느렸다. (따라서 추니까)
그런데 긴장하면 그것도 잘 안 된다.
그래서 궁금했다.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것들을 잘하지?
나는 왜 백지가 될까? 왜 머리에 넣은 것도 바로바로 기억하지 못할까?
그 긴장감의 기인을 아는 것이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인데, 이때 너무 새로웠다.
이건 내가 못하기 때문이고, 못하는 걸 내가 부끄러워하기 때문이었다.
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과거의 상처와 연결되어 있었다. 다수의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미움 받은 경험.
사람들이 못하는 나를 보고 비웃을까 봐 걱정한 것이다.
거기까지 닿으니 팍 떠오르는 것.
못하면 어쩔 거야? 자기도 이런 시절 있었을 텐데. 없었으면 천재겠지.
못해도 괜찮았다.
앞으로 바꾸면 됐다. 나는 발전할 것이다.
나는 늘 잘하는 것에만 치중해 오던 습관이 있어서, 내가 잘하지 못하면 언제나 고전했다.
그걸 극복하고 싶었다. 난 저것도 잘하고 싶으니까.
수학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만, (고1 8점 -> 2017 수능 수리 나형 94%, 2등급)
수학은 누구 앞에서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. 내가 못해도 천천히 하면 되니까 괜찮았다. 비교는 점수로만 가능했다.
하지만 춤은 실시간으로 내 모습이 상대방에게 비춰진다. 그리고 같은 동작을 하는 상대와 바로 비교할 수 있다.
나는 그게 너무나도 민망하던 사람이었다. 내가 못하는 걸 보여 주면, 내가 잘못 사는 것 같았다.
나는 늘 잘한다고 칭찬받아야 하는 완벽주의와 강박에 시달렸던 것이다.
그래.
못하는 걸 점차 도전하기. 그 새로운 장막을 춤이 열었다.
내재된, 끓는, 저 모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그 못함도 괜찮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.
재미있으니까. 하고 있으면 즐거우니까. 행복하니까.
나는 계속 춤을 출 것이다. 아마 서른까지, 그 이상까지도 쭉 출 것 같다.
몸을 새롭게 개발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즐겁다.
그 몸을 조각해 나가는 과정 또한, 즐겁다.
나에게 꾸준함은 낯선 일이다. 그런데 그 정도로 즐겁다. 얘로 인해서 다른 것들도 행복해진다.
나의 안전 기지다. 언제나 나의 발전과 함께해 줄.
그러니까, 계속 춤을 내 친구로 삼으려면.
불가능을 미리 재단하지 않을 것.
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, 저 사람은 나보다 선천적 능력치가 뛰어났구나 / 엄청난 시간이 있었겠구나
이 두 가지만 깨닫고, 비교하면서 나를 깎지 말 것.
배울 것. 벤치마킹할 것. 다 흡수해 버려서 그 사람이 인고하고 고민했던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삼켜 버릴 것.
다 쪼개 버려. 연습해. 전부 내 것으로 먹어 버려.
나의 이글이글 버전에 도움을 주신 모든 쌤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당.
<유념해야 할 것>
첫 번째, 안 될 수도 있다. 그게 뭐 어때서.
그 모습까지 이르는데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있었는지 자각해라.
두 번째,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려면 여러 가지를 극복해야 한다.
무언가 얻으려면, 당장은 무언가 포기해야 한다. 다 잡으려는 것도 조급함이다.
질투하게 될 때는 환호해라. 너의 순수한 욕망이다. 그 사람의 것을 다 먹어 버려라.
세 번째, 나아가려고 하지만 모든 것을 틀어막는 내 성인 아이, 내 과거를 돌아보아라.
어떤 이는 안 이러는데 나는 이러는 것은 내 성인 아이 때문임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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